나카자와 신이치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나카자와 신이치는 1950년 일본 야마나시현에서 태어난 학자이다. 도쿄 대학 대학원에서 네팔에서 티베트 불교를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티베트의 모차르트》를 발표하며 뉴 아카데미즘 붐을 일으켰다. 1988년 도쿄대 조교수 임용이 부결된 '나카자와 사건'으로 주목받았으며, 옴진리교에 대한 종교학적 접근과 관련하여 비판을 받았다. 현재 다마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예술 인류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칭성 인류학'을 제창한다. 그의 저술은 학계와 대중에게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여러 저서가 번역 출간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티베트학자 - 스벤 헤딘
스벤 헤딘은 중앙아시아 탐험과 고대 도시 유적 발굴에 기여한 스웨덴의 지리학자이자 탐험가이지만, 나치 독일과의 협력 관계로 비판을 받기도 하는 인물이다. - 티베트학자 - 크리스토퍼 벡위스
크리스토퍼 벡위스는 중앙아시아사, 특히 티베트사 연구에 기여한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언어학자로, 고구려어와 일본어의 친연성을 주장하며 '고구려-일본어족' 가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 다마 미술대학 교수 - 타케나카 나오토
타케나카 나오토는 일본의 배우, 코미디언, 영화 감독, 가수, 성우, 작가로 활동하며, 코미디언으로 데뷔하여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고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음악 활동도 펼쳤다. - 다마 미술대학 교수 - 호소노 하루오미
호소노 하루오미는 일본의 뮤지션이자 작곡가, 레코드 프로듀서로서, 핫피 엔도와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 일렉트로닉 음악의 선구자이자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 주오 대학 교수 - 모리모토 사토시
모리모토 사토시는 1941년생 일본의 정치인이자 국제정치학자로, 2012년 민간인 출신 최초로 방위대신을 역임했으며, 국가 안보 전문가로서 활동하며 일본회의 연관성 및 독도 관련 발언 등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 주오 대학 교수 - 요시미 요시아키
요시미 요시아키는 일본 제국 육군의 전쟁 범죄, 특히 위안부 문제와 화학 무기 사용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여 일본군의 조직적인 위안소 운영을 밝히는 데 기여한 일본사학자이다.
나카자와 신이치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나카자와 신이치 |
원어명 | 中沢新一 |
로마자 표기 | Nakazawa Shin'ichi |
출생일 | 1950년 5월 28일 |
출생지 | 야마나시현 야마나시시 |
직업 | 사상가, 종교학자, 문화인류학자 |
소속 | 다마미술대학 |
학력 | |
모교 | 도쿄 대학 |
관심 분야 | |
주요 관심사 | 문화인류학 |
기타 | |
참고 | |
기타 표기 | 필요에 따라 中澤新一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음 |
2. 생애
1950년 야마나시현 야마나시시에서 태어났다. 동대 투쟁으로 도쿄대 입시가 중단된 세대로,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거쳐 도쿄 대학 이과 2류에 입학했다. 이후 종교학으로 전향하여 문학부 종교사학과에서 수학했다[6].
2. 1. 가계 및 유년 시절
1950년 야마나시현 야마나시시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에는 아버지 나카자와 아쓰시(中沢厚)와 함께 야마나시현 내의 유적이나 민속 신앙의 흔적을 조사하러 자주 다녔다고 한다.가계나카자와 가문은 증조부 나카자와 도쿠베(中沢徳兵衛) 때부터 학문 및 사회 활동에 관여했다. 증조부 도쿠베는 생사 생산과 남염을 생업으로 한 곤야 도쿠베의 아들로, 생사 생산 판매와 무역으로 성공하여 히가시야마나시군 가노이와촌(야마나시시) 시모고우치카와의 거상이 되었다.[63][64] 그는 고후시의 구사카베 교회(일본 감리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 포교를 하며 민속 연구를 했던 야마나카 교코(山中共古)와 함께 세례를 받았고, 자신도 민속 연구를 했다.
조부 나카자와 기이치(中沢毅一)는 증조부 도쿠베와 함께 세례를 받은 이이지마 노부아키(飯島信明)의 딸과 결혼했으며, 마찬가지로 기독교도였다. 그는 제1고등학교 교수를 역임한 해양생물학자로, 쇼와 천황에게 진강(進講)을 한 적도 있다(아라마타 히로시의 『대동아 과학기담』 참조).
아버지 나카자와 아쓰시(中沢厚)는 시의원(일본 공산당 소속)이자 재야 민속학자였다. 숙부인 나카자와 모리토는 일본 공산당에 소속된 과학기술사학자였으며, 제철에 관한 민속학 연구도 수행했다.[65] 아버지 아쓰시는 숙부 모리토의 영향을 받아 공산당원이 되었다.
친인척 및 학력일본사학자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가 고모부이며, 작가 세리자와 고지로(芹沢光治良)와도 먼 친척 관계이다. 부인은 『땡땡의 모험』 등 많은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 가와구치 게이코(川口恵子)이다.
나카자와는 동대 투쟁으로 도쿄 대학 입시가 중단된 세대이다.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 입학했지만 가면 낭인을 거쳐, 이듬해 도쿄 대학 이과 2류에 다시 입학했다. 처음에는 생물학자를 목표로 했으나, 우에시마 케이지의 권유로 종교학자 야나가와 케이이치(柳川啓一)의 강의를 청강한 것을 계기로 종교학으로 전향하여 문학부 종교사학과에 진학했다.[6]
2. 2. 학창 시절과 네팔 수행
1950년 야마나시현 야마나시시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에는 아버지 아츠시와 함께 야마나시현 내의 유적이나 민속 신앙의 흔적을 조사하러 자주 다녔다고 한다. 동대 투쟁으로 도쿄대 입시가 중단된 세대로, 와세다 대학 문학부에 입학했지만 재수를 거쳐 이듬해 도쿄 대학 이과 2류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생물학자를 목표로 했으나, 우에시마 케이지의 권유와 종교학자 야나가와 케이이치의 강의를 청강한 것을 계기로 종교학으로 전향하여 문학부 종교사학과에 진학했다[6].도쿄 대학 문학부 종교사학과에서는 야나가와 케이이치의 세미나에 소속되었다. 야나가와의 주요 이론 중 하나는 "종교의 중심에는 '입문 의례'가 있다"는 것으로, 사람은 통과 의례를 통해 "성스러운 것"을 체험함으로써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야나가와 세미나는 종교학자가 책만 읽을 것이 아니라 입문 의례를 직접 체험해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성스러운 체험을 제공하는 종교를 찾아 "잠입" 조사를 하거나 직접 신자가 되어 체험하는 활동을 했다.
나카자와는 티베트 밀교를 연구 대상으로 선택했고, 도쿄 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1979년, 티베트 밀교 수행을 위해 네팔로 떠났다. 티베트 학자 이시하마 유미코에 따르면, 나카자와가 티베트 밀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독일인 Anagarika Govinda|아나가리카 고빈다eng(본명 에른스트 로타르 호프만, 1898년–1985년)의 자전적 저서 『백운의 저편』이었다[8]. 네팔 카트만두 분지의 보다나트에 거주하던 망명 티베트인 라마인 Khetsun Sangpo Rinpoché|케춘 삼포 린포체fra(1920년-2009년)에게 사사받았으며, 망명 닝마파의 초대 관장 Dudjom Jigdral Yeshe Dorje|둥조 린포체eng와 그의 후계자 Dilgo Khyentse|딩고 켄체 린포체eng도 만났다[66]. 나카자와의 스승인 케춘 삼포는 겔룩파 승원에서 학문을 닦은 닝마파 라마로, 환속하여 재가 밀교 수행자(응가파)가 된 인물이다. 그는 1959년 인도에 망명했고, 이듬해 달라이 라마 14세의 요청으로 둥조 린포체의 대리로서 일본에 파견되어[9] 10년간 동양문고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도쿄 대학 등에서도 강의했다[10]. 티베트 학자 야마구치 주이호는 케춘 삼포가 동양문고에서 자신의 조수를 했으며 일본어에 능통했다고 언급했다[34]. 나카자와는 이후 네팔, 인도, 시킴, 부탄 등지에서 족첸이라 불리는 티베트 사상과 명상 수행법을 배웠다[11]. "불교가 나오는 근원"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이 수행 경험은 훗날 나카자와 사상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12]. 1981년에는 티베트 난민 거주지에 사찰 건립을 돕기 위해 케춘 삼포와 공동 저자로 『무지개의 계단 - 티베트 밀교의 명상 수행』을 출판했다[13].
티베트 밀교 수행을 시작한 지 7일째 밤, 나카자와는 "헑"이라는 구호와 함께 심적(心滴)을 머리 꼭대기에서 뽑아내는 순간 체외 이탈을 경험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몸 밖에 나와 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나카자와는 이 경험을 스승인 라마에게 기쁘게 이야기했지만, 라마는 체외 이탈 체험의 가치를 냉담하게 부정하며 명상을 통해 체험한 의식 상태를 절대화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로 인해 나카자와는 일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14].
귀국 후, 네팔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83년 《티베트와 모차르트(チベットのモーツァルトjpn)》를 발표하고, 티베트 사자의 서를 소개하는 《삼만년의 죽음의 가르침-티베트 사자의 서의 세계(三万年の死の教え―チベット『死者の書』の世界jpn)》를 출간했다. 《티베트와 모차르트》는 같은 해 아사다 아키라가 발표한 《구조와 힘-기호론을 넘어서(構造と力-記号論を超えて-jpn)》와 함께 주목받으며 뉴 아카데미즘 붐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다.
2. 3. 네팔 귀국 후 활동과 뉴 아카데미즘
도쿄 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정 재학 중 네팔로 건너가 티베트 불교 닝마파의 수행을 경험했다.[66] 카트만두 분지의 보다나트에 거주하던 망명 티베트인 라마인 Khetsun Sangpo Rinpoché|케춘 삼포 린포체프랑스어(1920년-2009년)에게 사사받고, 망명 닝마파의 지도자인 Dudjom Jigdral Yeshe Dorje|둥조 린포체영어와 그 후계자인 Dilgo Khyentse|딩고 켄체 린포체영어도 만났다. 나카자와는 네팔, 인도, 시킴, 부탄 등지에서 족첸이라 불리는 티베트 사상과 명상 수행법을 배웠다.[11] 이러한 수행 경험은 이후 그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12] 나카자와는 수행 중 체외 이탈을 경험했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스승인 라마는 명상 체험의 절대화를 경계하며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고 한다.[14]귀국 후, 네팔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83년 《티베트와 모차르트(チベットのモーツァルト)》를 발표하고, 티베트 사자의 서를 소개한 《삼만년의 죽음의 가르침-티베트 사자의 서의 세계(三万年の死の教え―チベット『死者の書』の世界)》를 출간했다. 이 책들은 같은 해 아사다 아키라(浅田彰)가 발표한 《구조와 힘-기호론을 넘어서(構造と力-記号論を超えて-)》와 함께 큰 주목을 받으며 뉴 아카데미즘 붐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8년, 당시 도쿄 대학 교양학부 교수였던 니시베 스스무(西部邁)에 의해 같은 학부 사회학과 조교수로 추천되었으나, 교수회의에서 이례적으로 부결되는 일이 발생했다. 니시베는 교수회의 결정에 항의하며 사임했고, 이 사건은 '도쿄 대학 고마바 소동(東大駒場騒動)' 또는 '나카자와 사건' 등으로 언론에 보도되며 사회적 논란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옴 진리교에 대해 종교학적인 입장에서 접근하며 교단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67] 그러나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의 이러한 입장은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으며, 사건 발생 후의 관련 발언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68] 시마다 히로미(島田裕巳)[69]나 도마베치 히데토(苫米地英人)[70] 등 일부 지식인들은 나카자와의 입장을 비판하는 저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다마 미술대학(多摩美術大学) 미술학부 예술학과(芸術学科) 교수로 부임했으며, 동시에 예술인류학연구소(芸術人類学研究所) 소장을 겸임하며 활동하고 있다.
2. 4. 옴진리교와의 관계 및 비판
나카자와 신이치는 종교학적인 입장에서 옴진리교에 접근하여 교단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으나[67],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 발생 이후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았으며, 해당 사건에 대한 그의 발언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68]. 시마다 히로미島田裕巳일본어[69], 도마베치 히데토苫米地英人일본어[70] 등은 나카자와를 비판하는 저서를 발표하기도 했다.2. 5. 학문적 평가와 비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필립 데스코라, 자크 라캉, 질 들뢰즈 등의 서구 사상과 미나카타 구마구스, 오리쿠치 시노부 등의 일본 민속학·사상 연구, 티베트 불교 연구 등을 융합하여 독자적인 "대칭성 인류학"을 제창했다. 그러나 특정 학회에 속하지 않고 영역 횡단적 연구를 계속해 온 탓에, 아카데미즘 내에서 그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평가가 있다. 마츠무라 카즈오는 이를 두고 다른 연구자들이 나카자와의 작업을 논의함으로써 자신의 연구 범위가 좁다는 것이 드러날까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하며[29], 그의 작업을 괴테, 융, 야나기타 쿠니오 등과 같이 세계를 통째로 이해하려는 '나카자와학'으로 평가했다.요시모토 타카아키는 나카자와를 "일본 지식인 중에서도 일종의 진품"이라며 잇큐에 비견하고 "인류 정신의 고고학"이라고 높이 평가했다.[30] 편집자 마츠오카 세이고는 그의 편집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31],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 소설가 아라마타 히로시, 이토이 시게사토 등도 그의 저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토이 시게사토는 나카자와와 같이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을 학자들이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옹호하기도 했다.[40] 정치인 이와이 쿠니오미는 나카자와의 활동을 뉴에이지 운동의 일환으로 보며 그의 저서 『야생의 사고』가 세계를 바꿀 것이라고 기대했다.[32] 정치학자 나카지마 타케시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저술된 『일본의 대전환』이 원전 사고를 사상적으로 고찰하며 "세계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길을 구상하는 웅대한 문명론"이라고 평가했다.[33]
반면, 학문적 엄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 역시 미타 소스케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었다. 불교학자 하카마야 노리아키는 나카자와의 첫 단행본 『무지개의 계단』이 티베트 불교를 무비판적으로 예찬하는 경향을 이끌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경향이 1960년대 미국 히피 문화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나카자와 감수의 NHK 스페셜 『티베트 사자의 서』[27] 방송에서 정점에 달했고, 옴진리교 사건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28] 하카마야는 이후에도 나카자와의 불교 이해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조차 부족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34] 티베트학의 권위자인 야마구치 즈이호 역시 나카자와의 조첸 연구에 비판적 견해를 보였으며, 평론가 미야자키 테츠야도 초기부터 나카자와를 비판해왔다.[56] 베스트셀러가 된 『어스 다이버』는 지형 붐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지리학 연구자들로부터 자연과학적 오류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편, 학자들 사이에서도 렌미 히데히코나 아사다 아키라 등 그의 특수성을 평가하는 인물도 있다.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의 리제트 궤파르트는 나카자와를 정치적으로 "'기회주의'"적이며, 그의 자세가 "19세기 말의 탐미주의자나 딜레탕트와 단디의 부활"과 같다고 평가했다.[35] 종교학자 호리에 무네마사는 『카이에 소바쥬』 시리즈가 학문적 계몽서라기보다는 "실천적인 사상의 서"이며, 그의 사상이 반근대주의적 낭만주의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나카자와의 논의가 "대칭성을 실현하려다 보니, 무자각하게 외부와의 비대칭성을 구축하고, 스스로를 특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36] 종교학자 오타 토시히로는 『일본의 대전환』이 "반유대주의 경향을 숨긴 일본 문화 우월론"이며 "의식 혁명에 입각한 공산 사상 선전"과 같다고 비판하고, 그 사고 형태가 "나치즘, 야마기시회, 옴진리교와 같은 전체주의 컬트와 기본적으로 동형"이라고 평가했다.[37] 논픽션 작가 이와가미 야스미는 『시작의 레닌』을 소련 붕괴 후 등장한 거의 유일한 레닌 찬미서라며 혹평했다. 그는 나카자와가 레닌을 심원한 진리를 체현한 '아데프트(성취자)'로 묘사하는 논리가, 옴진리교의 아사하라가 외친 테러 정당화 논리와 같다며 강하게 비판했다.[38][56]
나카자와의 저작은 옴진리교에 영향을 미쳤으며, 사건 발생 전에는 교단과 관계를 맺고 아사하라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건 이후에는 옴진리교와 거리를 두고 비판하는 입장을 취했다. 종교학자 시마다 히로미처럼 강한 규탄을 받지는 않았으나, 옴진리교와의 관련 방식이나 사건 이후 태도에 대해서는 비판이 적지 않다.[36] 이러한 경위로 인해 일부 종교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36]
나카자와 자신은 자신의 "예술 인류학"에 대해 반성을 거듭했으며, 과거의 실패를 통해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고 밝혔다.[40] 또한 종교의 실제를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이를 모르는 학자들이 가르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40]
2. 6. 최근 활동
2006년 이래 다마 미술대학 미술학부 예술학과 교수 겸 예술인류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임하고 있다.나카자와는 특정 학회에서의 위치나 권위와는 거리를 두며 영역을 넘나드는 연구 활동을 지속해왔다. 이로 인해 아카데미즘 내에서 그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마츠무라 카즈오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나카자와의 신화론이나 종교론을 다루는 것이 자신의 연구 범위를 좁게 드러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일 수 있다고 지적하며, 나카자와의 작업을 괴테, 훔볼트, 프로이트, 융, 야나기타 쿠니오, 오리쿠치 시노부, 요시모토 타카아키 등과 같이 '나카자와 학'이라 불릴 만한, 세계를 통째로 이해하려는 시도로 평가했다.[29] 요시모토 타카아키는 나카자와를 "일본 지식인 중에서도 일종의 진품"이라 칭하며 잇큐에 비견하고 "인류 정신의 고고학"이라는 표현으로 높이 평가했다.[30] 편집자 마츠오카 세이고는 나카자와의 화법과 편집 능력을 높이 사며, 다양한 소재를 해독하며 전개하는 편집 과정이 자신과 공통된다고 언급했다(결론은 다르다고 덧붙임). 또한 일반 학술 논문과 달리 나카자와의 이야기는 논리가 활약할 '장면'을 제시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31]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 수집가 겸 소설가 아라마타 히로시, 이토이 시게사토 등도 그의 저작을 높이 평가했으며, 이토이는 학자들이 나카자와와 같이 다른 길을 가는 인물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옹호하기도 했다.[40] 정치인 이와이 쿠니오미는 나카자와의 활동을 뉴에이지 운동의 일환으로 보며, 그의 저서 『야생의 사고』(2012년)가 세계 변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32] 정치학자 나카지마 타케시는 『일본의 대전환』(2011년)을 원전 사고 이후 세계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웅대한 문명론으로 평가했다.[33]
반면, 그의 독특한 저술 스타일과 학문적 엄밀성 부족에 대한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었다. 미타 소스케 등이 대표적이며, 티베트학의 권위자인 야마구치 즈이호는 일찍이 조첸을 비중 있게 다루는 나카자와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불교학자 하카마야 노리아키는 1980년대 후반부터 나카자와의 불교 이해를 비판했으며, 특히 요시모토 타카아키, 우메하라 타케시와의 공저 『일본인은 사색했는가』(1995년)에 대해 불교의 기본 상식 부족과 자의적 해석을 지적하며 강하게 비판했다.[34] 불교의 중관 사상을 중시하는 평론가 미야자키 테츠야 역시 초기부터 나카자와를 비판해왔다.[56] 『어스 다이버』(2005년)는 지형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일으켰으나, 지리학 연구자들로부터 자연과학적 오류를 지적받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의 일본 문화 연구자 리제트 궤파르트는 나카자와를 정치적으로 "'기회주의자'"로 평하며, 그의 자세가 "기존 전문 학문을 부정하고 '지식에 대한 에세이풍의 자세'를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이는 19세기 말 탐미주의자나 딜레탕트의 부활과 유사하다고 보았다.[35] 종교학자 호리에 무네마사는 『카이에 소바쥬』 시리즈가 학문적 계몽서라기보다는 저자의 독창적 사상을 담은 "실천적인 사상의 서"라고 평가했다. 그는 나카자와의 논의가 매력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에 반대하고 공동체주의와 비합리주의를 찬미하는 반근대적 낭만주의의 한 형태이며, "대칭성을 추구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외부와의 비대칭성을 구축하고 스스로를 특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36] 종교학자 오타 토시히로는 『일본의 대전환』(2011년)을 "반유대주의 경향을 숨긴 일본 문화 우월론이자 의식 혁명에 기반한 공산 사상 선전물"로 규정하며, 그 사고방식이 나치즘, 야마기시회, 옴진리교와 같은 전체주의 컬트와 유사하고 구체적인 대안 제시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37] 논픽션 작가 이와가미 야스미는 『시작의 레닌』(1994년)을 소련 붕괴 후 등장한 이례적인 레닌 찬미서로 혹평하며, 나카자와가 레닌을 심원한 진리를 체현한 인물로 묘사하는 방식이 옴진리교의 테러 정당화 논리와 유사하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문제 삼았다.[38][56] 한편, 『시작의 레닌』은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가 레닌 연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39]
과거 옴진리교와의 관계 및 사건 전후의 발언과 태도에 대한 비판도 여전히 존재한다. 나카자와는 사건 이후 옴진리교와 거리를 두며 비판적 입장을 취했지만, 일부에서는 그의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위로 인해 종교학계와는 거리를 두고 있으며, 일부 종교학자들은 그에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36]
나카자와 자신은 자신의 "예술 인류학"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으며, 과거의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활동하려 한다고 밝혔다.[40] 또한 종교의 실제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으며, 이를 모르는 이들이 가르치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40]
3. 주요 저서
나카자와 신이치의 저서 중 특히 『무지개의 계단 - 티베트 밀교의 명상 수행』(1981년)은 옴진리교와의 관련성으로 주목받았다. 하카마야 노리아키는 이 책이 옴진리교에서 성전으로 여겨졌다고 언급했으며[28], 옴의 후계 단체인 Aleph의 전 대표 노다 시게토는 교단 내에서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서적 외에는 독서가 금지되었음에도 『무지개의 계단』만큼은 참고서로 반쯤 공공연하게 읽혔다고 증언했다.[42] 나카자와 자신도 이 책이 아사하라 쇼코의 좌우명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41] 종교학자 오타 토시히로는 옴진리교에서 사용된 포아라는 용어가 『무지개의 계단』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으나[42], 책에는 '포와'로 표기되어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미야자키 테츠야는 옴진리교의 교리가 사호다 츠루지의 요가 철학과 나카자와의 『무지개의 계단』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하며, 두 저서 모두 신흥 종교 아함종 계열 출판사에서 출간된 점에 주목했다. 그는 나카자와가 옴 사상의 기반을 만드는 데 기여한 책임이 있으며, 족첸과 여래장 사상의 위험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러한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나카자와의 저술이 주요 출판사에서 계속 받아들여지는 현상에 의문을 제기했다.[56]
3. 1. 단독 저서
- 『티베트의 모차르트』 세리카 서방, 1983년 / 고단샤 학술 문고, 2003년
- 『설편 곡선론』 아오토샤, 1985년 / 주오코론 문고, 1988년
- 『들토끼의 달리기』 시초샤, 1986년 / 주오코론 문고, 1989년
- 『이코노소피아 - 성화 10강』 가와이데 쇼보 신샤, 1987년 / 가와이데 문고, 1989년
- 『무지개의 이론』 신초샤, 1987년 / 신초 문고, 1990년 / 고단샤 문예 문고, 2010년
- 『악당적 사고』 헤이본샤, 1988년 / 헤이본샤 라이브러리, 1994년
- 『꿀이 흐르는 박사』 세리카 서방, 1989년
- 『바르셀로나, 비수 3』 주오코론샤, 1990년 / 주오코론 문고, 1992년 / 고단샤 학술 문고, 2014년
- 『동방적』 세리카 서방, 1991년 / 고단샤 학술 문고, 2012년
- 『숲의 바로크』 세리카 서방, 1992년 / 고단샤 학술 문고, 2006년
- 『행복의 무수한 단편』 가와이데 문고, 1992년
- 『괴테의 귀』 가와이데 쇼보 신샤, 1992년 / 가와이데 문고, 1995년
- 『지천사 (케루빔)의 포도주』 가와이데 쇼보 신샤, 1992년 / 가와이데 문고, 1995년
- 『3만 년의 죽음의 가르침 - 티베트 "사자의 서"의 세계』 카도카와 쇼텐, 1993년 / 카도카와 문고 소피아 1996년
- 『리얼한 것』 메타로그, 1994년 / 겐토샤 문고, 1997년
- 『시작의 레닌』 이와나미 쇼텐, 1994년 / 동시대 라이브러리, 1998년 / 이와나미 현대 문고, 2005년
- 『철학의 도호쿠』 아오토샤, 1995년 / 겐토샤 문고, 1998년
- 『순수한 자연의 증여』 세리카 서방, 1996년 / 고단샤 학술 문고, 2009년
- 『주머니 속의 야생 - 포켓몬과 아이』 이와나미 쇼텐, 1997년 / 신초 문고, 2004년
- 『포켓몬의 신화학 - 신판 주머니 속의 야생』 KADOKAWA/카도카와 가쿠게이 출판, 2016년 10월
-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리카 서방, 1999년
- 『사쿠야』 시즈오카 신문사, 2001년
- 『피로소피아 야포니카』 슈에이샤, 2001년 / 고단샤 학술 문고, 2011년
- 『녹색 자본론』 슈에이샤, 2002년 / 지쿠마 가쿠게이 문고, 2009년
- 『인류 최후의 철학 - 카이에 소바쥬〈Ⅰ〉』 고단샤 선서 메치에, 2002년, 단행본 신판 2023년 7월
- 『곰에서 왕으로 - 카이에 소바쥬〈Ⅱ〉』 고단샤 선서 메치에, 2002년
- 『정령의 왕』 고단샤, 2003년 / 고단샤 학술 문고, 2018년
-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 - 카이에 소바쥬〈Ⅲ〉』 고단샤 선서 메치에, 2003년
- 『신의 발명 - 카이에 소바쥬〈Ⅳ〉』 고단샤 선서 메치에, 2003년
- 『대칭성 인류학 - 카이에 소바쥬〈Ⅴ〉』 고단샤 선서 메치에, 2004년
- 『카이에 소바쥬』 고단샤, 2010년, 신판 2023년 - ※위 5권의 합본
- 『나의 아저씨 아미노 요시히코』 슈에이샤 신서, 2004년
- 『어스 다이버』 고단샤, 2005년, 증보판 2019년
- 『예술 인류학』 미스즈 서방, 2006년
- 『삼위일체 모델 - TRINITY』 도쿄 이토이 시게사토 사무소, 2006년. 소저
- 『미크로코스모스 Ⅰ - 밤의 지혜』 시키샤, 2007년 / 주오코론 문고, 2014년
- 『미크로코스모스 Ⅱ - 귀를 위한, 작은 혁명』 시키샤, 2007년 / 주오코론 문고, 2014년
- 『고대에서 온 미래인 오리구치 시노부』 지쿠마 프리마 신서, 2008년
- 『수렵과 엮어 바구니 - 대칭성 인류학 Ⅱ』 고단샤〈예술 인류학 총서〉, 2008년
- 『새의 불교』 신초샤, 2008년 / 신초 문고, 2011년 6월
- 『신님 (일본의 근원)』 고단샤, 2011년 6월
- 『일본의 대전환』 슈에이샤 신서, 2011년 8월
- 『야생의 과학』 고단샤, 2012년
- 『오사카 어스 다이버』 고단샤, 2012년
- 『일본 문학의 대지』 KADOKAWA/카도카와 가쿠게이 출판, 2015년 / 카도카와 소피아 문고, 2019년
- 『구마노스 星의 시간』 고단샤 선서 메치에, 2016년
- 『곰을 꿈꾸다』 KADOKAWA, 2017년
- 『호랑이 산에 들어가다』 KADOKAWA, 2017년
- 『어스 다이버 도쿄의 성지』 고단샤, 2017년
- 『렘마 학』 고단샤, 2019년
- 『어스 다이버 신사 편』 고단샤, 2021년
- 『오늘의 미토로지』 고단샤 선서 메치에, 2023년
- 『정신의 고고학』 신초샤, 2024년
- 『구조의 깊이 레비-스트로스론』 고단샤 선서 메치에, 2024년
3. 2. 번역서
- 폴 부이삭 『서커스 - 곡예와 동물 기예의 기호론』 세리카 서방, 1977년 12월
- 코르넬리우스 아우에한트 『메기 그림 - 민중적 상상력의 세계』(공역) 세리카 서방, 1979년 10월 / 이와나미 문고, 2013년
- P. G. 보가투이리요프 『의상의 포클로어』(공역) 세리카 서방, 1981년 9월
- 줄리아 크리스테바 『세메이오티케(2) - 기호의 생성론』(공역) 세리카 서방, 1984년 7월
- 줄리아 크리스테바 (편저) 『기호의 횡단』(공역) 세리카 서방, 1987년 11월
- 에바 반 담 『티베트의 성자 밀라레파』 호조칸, 1994년 7월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산타클로스의 비밀』 세리카 서방, 1995년 12월
- 마르크 드 스메트 (편) 『선의 말』 기노쿠니야 서점, 1996년 6월
- 미셸 픽마르 (편) 『인디언의 말 - 북미 인디언의 기록에서』 기노쿠니야 서점, 1996년 9월
- 마르크 드 스메트 (편) 『붓다의 말』(공역) 기노쿠니야 서점, 1996년 12월
- 라마 켕춘 삼포 『지혜의 아득한 정상』(편역) 카도카와 서점, 1997년 7월
- * 『티베트의 스승』 카도카와 소피아 문고, 2015년 ※ 위를 대폭 개정, 개제한 것
- 달라이 라마 『달라이 라마, 예수를 말하다』 카도카와 서점, 1998년 5월
- 조셉 불착 (편) 『그래도 당신의 길을 가라 - 인디언이 말하는 내추럴 위즈덤』(공역) 메르쿠마르, 1998년 8월
- 라바트 딕슨 『그레이 올 - 야성을 산 남자』(공역) 카도카와 서점, 2000년 6월
- 달라이 라마, 파비앙 우아키 『달라이 라마, 생명과 경제를 말하다』 카도카와 서점, 2003년 3월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말해진 말』 코단샤 선서 메치에, 2009년 6월
- 이본느 베르디에 『요리 민속학 입문』 쿠쿠노치 학사(책자), 2009년 9월
3. 3. 수상 내역
4. 옴진리교 관련 상세
(작성할 내용 없음 - 원본 소스에 해당 섹션 관련 정보가 없습니다.)
5. 사상 및 평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필립 데스코라, 자크 라캉, 질 들뢰즈 등의 현대 인류학, 미나카타 구마구스, 오리쿠치 시노부, 타나베 하지메, 아미노 요시히코 등에 의한 일본 열도의 민속학·사상·역사 연구, 그리고 자신의 수행 경험에 기반한 티베트 불교 사상 연구를 종합하여 독자적인 "대칭성 인류학"을 제창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는 에너지 문제와 현대 정치 참여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며, 2013년에는 실천적 활동으로 "그린 액티브"를 설립했다.
긍정적 평가
- 마츠무라 카즈오는 나카자와의 연구가 학계에서 잘 논의되지 않는 이유를 다른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범위가 좁다는 것이 드러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29], 그의 작업을 괴테, 훔볼트, 프로이트, 융, 야나기타 쿠니오, 오리쿠치 시노부, 요시모토 타카아키 등과 같이 세계를 통째로 이해하려는 시도인 '나카자와 학'으로 평가하며 『카이에 소바쥬』의 종합성을 높이 샀다.
- 요시모토 타카아키는 나카자와를 "일본 지식인 중 진품"이라 칭하며 잇큐에 비견하고 "인류 정신의 고고학"이라며 높이 평가했다.[30]
- 편집자 마츠오카 세이고는 나카자와의 서술 방식과 편집 능력을 긍정적으로 보며, 자신과 공통된 "편집적 프로세스"를 지녔다고 언급했다(결론은 다르다고 덧붙임). 또한 나카자와의 글이 구체적인 "장면"(토피카)을 제시하여 논리가 활약할 지점을 보여주는 점을 좋게 평가했다.[31]
-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 수집가·소설가 아라마타 히로시, 이토이 시게사토 등도 그의 저작을 높이 평가했으며, 이토이는 학자들이 나카자와처럼 다른 길을 가는 이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옹호했다.[40]
- 정치인 이와이 쿠니오미는 나카자와의 활동을 뉴에이지 운동의 일환으로 보며, 그의 저서 『야생의 사고』(2012년)가 세계를 바꿀 것이라고 기대했다.[32]
- 정치학자 나카지마 타케시는 『일본의 대전환』(2011년)을 원전 사고 이후 "세계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길을 구상하는 웅대한 문명론"이라고 평가했다.[33]
- 학자들 중에서도 렌미 히데히코나 아사다 아키라 등 그의 특수성을 평가하는 인물도 있다.
비판적 평가
- 나카자와의 첫 단행본 『무지개의 계단 - 티베트 밀교의 명상 수행』(1981년, 헤이카와 출판사 발행)에 대해, 불교학자 하카마야 노리아키는 일본 내 티베트 밀교에 대한 무비판적 예찬 경향을 이끌었다고 평가한다. 하카마야에 따르면, 이는 1960년대 미국 히피 문화의 연장선상에서 티베트 불교의 신비주의적 측면만을 강조하던 당시 미국의 티베트 불교 붐과 유사하며, 일본에서도 나카자와를 중심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해졌다. 이 흐름은 1993년 NHK가 방송한 나카자와 감수의 NHK 스페셜 『티베트 사자의 서』[27]에서 정점에 달했으며, 옴진리교 사건 역시 이러한 붐의 정점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고 하카마야는 지적한다.[28]
- 학문적 엄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미타 소스케 등으로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다.
- 티베트학자 야마구치 즈이호는 일찍이 조첸을 중시하는 나카자와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보였다.
- 하카마야 노리아키는 1988년과 1989년의 글에서 나카자와의 불교 이해를 비판했으며, 요시모토 타카아키·우메하라 타케시와의 공저 『일본인은 사색했는가』(1995년)에 대해서도 "불교의 기본적인 '상식'조차 모르고 제멋대로 발언한다", "의심스러운 것을 팔리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기본적인 오류가 많다고 지적했다.[34]
- 중관 사상을 중시하는 평론가 미야자키 테츠야 역시 초기부터 나카자와를 비판했다.[56]
- 『어스 다이버』(2005년)는 지형 붐을 일으켰으나, 지리학 연구자들로부터 자연과학적 오류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교의 일본 문화 연구자 리제트 궤파르트는 나카자와를 정치적으로 "'기회주의자'"이며, 그의 '지식에 대한 에세이풍 자세'는 19세기 말 탐미주의자나 딜레탕트의 부활과 같다고 평가했다.[35]
- 종교학자 호리에 무네마사는 『카이에 소바쥬』가 저자의 독창적 사상을 전면에 내세운 "실천적인 사상의 서"이지 학술 계몽서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했다. 그는 나카자와의 사상을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에 반대하고 공동체주의와 비합리주의를 찬미하는 "반근대주의적 낭만주의의 한 버전"으로 규정하며, "대칭성을 추구하면서도 무자각적으로 외부와의 비대칭성을 구축하고 스스로를 특권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36]
- 종교학자 오타 토시히로는 『일본의 대전환』(2011년)을 "반유대주의 경향을 숨긴 일본 문화 우월론이자 의식 혁명에 기반한 공산 사상 선전물"로 보며, 그 사고방식이 "나치즘, 야마기시회, 옴진리교 같은 전체주의 컬트와 기본적으로 같다"고 비판하고, 구체적인 대안 제시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37]
- 논픽션 작가 이와가미 야스미는 『시작의 레닌』(1994년)을 소련 붕괴 후 나온 유일한 레닌 찬양서인 괴서라고 혹평했다. 그는 나카자와가 레닌을 심원한 진리를 체현한 '아데프트(성취자)'로 묘사한 것이,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가 테러를 정당화한 논리와 유사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38] 이와가미는 또한 미야자키 테츠야와 야마구치 즈이호의 비판에 대해 나카자와가 직접 자신의 사상가적 입장을 밝히길 바랐다고 언급했다.[56] (한편, 이 책은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가 레닌 연구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39])
- 나카자와의 저작은 옴진리교에 영향을 주었으며, 사건 발생 전에는 교단과 관계를 맺고 아사하라 쇼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건 이후에는 옴진리교와 거리를 두고 비판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시마다 히로미와 달리 큰 비난을 받지는 않았으나, 그의 옴진리교 관련 태도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존재한다. 나카자와는 종교학회와 교류가 없었으며, 이러한 배경 때문에 일부 종교학자들 사이에서는 그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36] (옴진리교 관련 상세 평가는 다음 절 참조)
나카자와 자신은 자신의 "예술 인류학"에 대해 숙고를 거듭했으며, 과거 큰 실패를 경험했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40] 그는 종교의 실제를 경험적으로 알기 때문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지만, 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에 의문을 느낀다고도 밝혔다.[40]
참조
[1]
웹사이트
特定課題研究ユニット詳細 2016年度
https://www.meiji.ac[...]
明治大学
2020-12-14
[2]
웹사이트
特定課題研究ユニット詳細 2017年度
https://www.meiji.ac[...]
明治大学
2020-12-14
[3]
잡지
宗教学者・中沢新一の死
集英社
1995-04-25
[4]
웹사이트
京都大学こころの未来研究センター
http://kokoro.kyoto-[...]
京都大学
2020-07-03
[5]
웹사이트
http://www.webdice.j[...]
[6]
서적
虹の理論
講談社文芸文庫
2010
[7]
뉴스
宗教学者"世代超え"対談・島田裕巳×大田俊寛(中編)「島田さんがオウム擁護派と見なされたのには、4つの理由があった」
https://www.cyzo.com[...]
日刊サイゾー
[8]
서적
世界を魅了するチベット―「少年キム」からリチャード・ギアまで
https://books.google[...]
三和書籍
2003
[9]
서적
知恵の遙かな頂
角川書店
1997
[10]
웹사이트
ケツン・サンポ・リンポチェ略歴
http://www.dzogchen.[...]
[11]
간행물
季刊セムSems
ゾクチェン研究所
1999
[12]
서적
惑星の風景
青土社
2014
[13]
서적
虹の理論
講談社文芸文庫
2010
[14]
잡지
私の中沢新一論
宝島社
1996-06
[15]
서적
惑星の風景
青土社
2014
[16]
서적
虹の理論
講談社文芸文庫
2010
[17]
웹사이트
DVD『チベット死者の書』公式サイト
http://www.ghibli.jp[...]
NHKエンタープライズ
2018-08-04
[18]
서적
三万年の死の教え - チベット『死者の書』の世界
角川文庫ソフィア
[19]
잡지
中沢新一氏とNHKが持ち上げる「チベット死者の書」はエセ仏典
1994
[20]
웹사이트
Dzogchen Institute Japan: About
http://dzogchen.or.j[...]
2016-06-20
[21]
문서
多摩美術大学芸術人類学研究所設立趣意書
2015
[22]
뉴스
芸術人類学:多摩美大に研究所創設 中沢新一所長『野生を再び』
毎日新聞
2006-04-14
[23]
웹사이트
ほぼ日刊イトイ新聞 - 芸術人類学研究所 青山分校!
https://www.1101.com[...]
ほぼ日刊イトイ新聞
2018-08-04
[24]
웹사이트
明治大学の教養 Vol.20
http://www.meiji.net[...]
2012-01-01
[25]
웹사이트
河合隼雄学芸賞│ 一般財団法人 河合隼雄財団
http://www.kawaihaya[...]
一般財団法人 河合隼雄財団
2018-08-04
[26]
뉴스
南方熊楠賞に中沢新一氏 「アースダイバー」で注目 和歌山・田辺市
https://web.archive.[...]
産経
2016-03-04
[27]
웹사이트
NHKスペシャル チベット死者の書
http://www.nhk-ep.co[...]
[28]
논문
松本史朗著「チベット仏教哲学」
http://repo.komazawa[...]
駒澤短期大学仏教科
1998-10
[29]
서적
神話思考1
言叢社
2010
[30]
웹사이트
はじめての中沢新一。
https://www.1101.com[...]
ほぼ日刊イトイ新聞
2018-08-04
[31]
웹사이트
(書評)中沢新一著『対称性人類学』2004 講談社選書メチエ
https://1000ya.isis.[...]
[32]
블로그
ネオゲルマン異教とニューエイジ運動
http://iwai-kuniomi.[...]
2012-08-04
[33]
웹사이트
原発の超克へと、渾身の文明論
http://book.asahi.co[...]
2011-10-16
[34]
논문
書評 吉本隆明・梅原猛・中沢新一著『日本人は思想したか』
http://repo.komazawa[...]
駒澤短期大学仏教科
1996-10
[35]
서적
現代日本のスピリチュリティ
岩波書店
2013
[36]
논문
中沢新一著, 『カイエ・ソバージュ』(全5巻), 講談社, 四六判, I『人類最古の哲学』
https://doi.org/10.2[...]
日本宗教学会
[37]
웹사이트
中沢新一『日本の大転換』への批判
http://gnosticthinki[...]
2011-10-29
[38]
간행물
中沢新一レーニン礼賛の驚くべき虚構
http://www.hh.iij4u.[...]
[39]
서적
未完のレーニン
講談社
[40]
웹사이트
初めての中沢新一 アースダイバーから芸術人類学まで 第50回
https://www.1101.com[...]
2006-02-07
[41]
블로그
思想の罪、思想家の責任
http://lizliz.tea-ni[...]
2009-04-25
[42]
웹사이트
〈対談〉元アーレフ代表・野田成人×宗教学者・大田俊寛(前編) 『自ら「グル」になろうとした中沢新一ら研究者たちの罪と罰』
https://www.cyzo.com[...]
日刊サイゾー
2011-08-31
[43]
뉴스
凶悪犯・麻原彰晃を持ち上げた実名リスト(2/3ページ)
https://president.jp[...]
2019-08-29
[44]
간행물
SPA!
[45]
뉴스
オウム真理教のどこが悪いのか
[46]
서적
独占手記・元オウム信者の告発「僕と中沢新一さんのサリン事件」
宝島社
[47]
웹사이트
【1】入信と麻原への帰依 | 1.上祐総括:オウム入信から現在まで | 上祐史浩個人の総括 | オウムの教訓 -オウム時代の反省・総括の概要-
http://hikarinowa.ne[...]
[48]
논문
現代社会と仏教--特にカルトの盛行に関連して
http://repo.komazawa[...]
駒澤大学仏教学部
[49]
논문
オウム真理教の捉え方
https://hdl.handle.n[...]
北陸宗教文化研究会
2001-03
[50]
서적
imago 1995年8月臨時増刊号
http://www.seidosha.[...]
青土社
[51]
간행물
週刊プレイボーイ
[52]
웹사이트
http://ch.nicovideo.[...]
[53]
간행물
オウムとは何だったのか
[54]
서적
憲法九条を世界遺産に
集英社新書
[55]
서적
オウムという悪夢
[56]
서적
中沢新一の思想責任 ベールを脱いだ日本のフリーメーソンたち
宝島社
[57]
서적
ニッポンの思想
講談社
[58]
서적
中沢新一批判、あるいは宗教的テロリズムについて
亜紀書房
[59]
서적
スピリチュアリズム
にんげん出版
[60]
간행물
福田恒存から断筆・筒井康隆まで戦後論壇この50人・50冊
[61]
블로그
地下鉄サリン事件と中沢新一(2)
https://blog.goo.ne.[...]
2007-03-25
[62]
웹사이트
ayusーいのち
http://pemagyal.coco[...]
2008-11
[63]
서적
僕の叔父さん 網野善彦
講談社新書
[64]
웹사이트
中澤眞二
http://www6.plala.or[...]
[65]
논문
山梨県におけるキリスト教と民俗学-山中共古から中沢新一まで-
[66]
문서
닝마파
[67]
뉴스
옴 진리교의 어디가 나쁘다는 것인가(オウム真理教のどこが悪いのか)
[68]
서적
독점기사 전 옴 진리교 신자의 고발「나와 나카자와 신이치 씨의 사린 사건(僕と中沢新一さんのサリン事件)」
다카라지마 샤(宝島社)
[69]
서적
나카자와 신이치 비판, 또는 종교적 테리리즘에 관하여(中沢新一批判、あるいは宗教的テロリズムについて)
아키쇼보(亜紀書房)
[70]
서적
스피리추얼리즘(スピリチュアリズム)
닌겐슛판(にんげん出版)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